음향시스템 전문 회사인 소닉티어의 박승민 대표(42)는 지난 11일 산업은행에 3차원(3D) 음향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20억원에 팔기로 계약을 맺었다. 핵심 기술을 팔긴 했지만 소닉티어는 여전히 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용해 제품을 만들고 해외 구매자의 주문을 받는다. 기술을 판 뒤 산업은행에 은행 대출금리 수준의 사용료를 내고 이를 이용할 권리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3년 뒤에는 기술을 다시 사들일 권리도 갖고 있다. 보유한 지식재산권(IP)을 유동화해 기업은 현금을 손에 쥐고, 산업은행은 기업에서 사용료를 받아 돈을 버는 ‘윈-윈’ 구조다.

산업은행이 지난 1월 국내에서 처음 출범한 IP펀드가 두 달 만에 투자사례를 냈다. 중견 중소기업의 특허를 사들이거나 이 기업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펀드다. 1000억원 한도로 조성됐다.

산은이 20억원을 투자한 소닉티어는 2차원(2D) 음향시스템 시장을 독점한 돌비에 대항하는 3D 시스템을 만드는 업체다.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3대 영화관에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산은은 이날 철도차량 문 제작 및 제어시스템에 관한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소명(대표 노경원)과도 50억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맺었다.

소닉티어와 소명, 두 회사의 신용등급은 모두 ‘B’다. 통상 시중은행이 BB+ 등급까지만 신규 대출을 내주는 것을 감안하면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수준이다. 허영기 산업은행 기술금융부 팀장은 “기술 개발에 주력하다 보니 자금을 거의 다 소진해 재무제표만으로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산은 IP펀드는 1월 출범 후 약 1개월간 두 회사의 특허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로 평가받는지, 시장성이 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평가해 합격점을 줬고 바로 투자가 이뤄졌다.

신생기업 입장에서 IP펀드는 보유한 무형자산을 유동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허 팀장은 “사용하지 않는 특허를 펀드에 판매해 공개한 뒤 특허 이용자에게 로열티를 받을 수도 있다”며 “로열티를 받을 경우 펀드와 기업이 일정 비율로 수익을 나눠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허권 분쟁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IP펀드에서 특허권을 소유하면 자금력을 바탕으로 소송을 남발하거나 특허를 무력화하려는 특허 괴물의 시도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상은/이해성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