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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권 투자 유치 시대 도래…브랜드만 좋으면 자금 걱정 No

산업은행 이어 IBK도 펀드 조성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3.07.31 11:16:36
  • 최종수정 : 2013.07.31 14:47:38
브랜드만 좋으면 상표권으로도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은 최근 코데즈컴바인 상표권을 매개로 100억원을 유치한 코데즈컴바인 명동 매장.

브랜드만 좋으면 상표권으로도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은 최근 코데즈컴바인 상표권을 매개로 100억원을 유치한 코데즈컴바인 명동 매장.

# 지난 4월 중견 패션업체 코데즈컴바인은 지식재산권(IP)펀드에 상표권을 매각하며 1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연매출 2000억원대를 오르내리는 중견기업이지만 요 몇 년 새 유니클로, 자라, H&M 등 해외 유명 SPA(패스트패션) 브랜드에 밀려 고전해왔던 터.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자금이 절실했던 차에 KDB산업은행·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이 만든 IP 전문 투자펀드가 상표권만 보고 투자를 하겠다니 코데즈컴바인에는 다시없는 희소식이었다. 대상 상표권은 코데즈컴바인(codes combine)과 마루(MARU), 옹골진, 노튼(Noton) 등 코데즈컴바인이 보유한 브랜드 대다수다.

박상돈 코데즈컴바인 회장은 “종전의 부동산 담보 대출 방식을 넘어 상표권이라는 무형자산을 금융권에서 인정해줬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투자업계는 물론 고객들도 코데즈컴바인을 더욱 신뢰하는 분위기다. 패션사업에 한평생 매진해온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수치로 입증받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뿌듯하다”라고 전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창조금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상표권으로도 투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통상 IP금융 하면 특허권을 담보로 한 투자를 떠올리지만, 상표권도 유망한 투자 유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코데즈컴바인 사례는 상표권 투자 사례 1호다. IP펀드를 활용한 상표권 투자 유치 방식은 대략 이렇다.

IP펀드가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의 상표권만 사들인다. 대신 IP펀드는 기업에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다시 빌려준다. 기업은 계속 해당 브랜드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세일즈앤드라이선스백(Sales and License Back) 구조라고 통칭한다. 기업 입장에선 현금을 마련할 수 있어 좋고, 펀드 투자자는 고정적인 사용료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좋은 구조다. 때에 따라서는 투자받은 현금으로 기업이 매출과 이익을 늘린 후 일정 기간이 지나 펀드로부터 상표권을 되사올 수 있게 계약을 맺기도 한다.

상표권 매매의 방식으로 거액이 오간 거래는 이전에도 있었다.

삼성제약 에프킬라가 대표적이다. 한국존슨은 1990년대 레이드(Raid)라는 상표를 앞세워 국내 살충제 시장에 진출했지만 당시 에프킬라 상표에 대한 인지도가 워낙 높던 터라 한국존슨의 시장점유율은 쉽게 오르지 못했다. 고민 끝에 한국존슨은 1998년 에프킬라사 상표권을 삼성제약으로부터 297억원에 매입했다. 1998년 당시 에프킬라의 매출액은 약 168억원에 불과했으니 상표권 가치가 연매출액보다 높았다.

수조원 규모로 커진 아웃도어 시장에서도 상표권 매매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밀레(Millet) 상표를 갖고 있는 라푸마그룹은 한국 사용권자였던 에델바이스(현 ㈜밀레)에 한국과 중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표권을 100억원에 매각(2009년)했다. 같은 해에 역시 ‘라푸마’를 한국과 중국에서 쓸 수 있는 상표권을 LG패션에 팔았다. 한국 회사들은 통상 해외 브랜드와 다년간 사용권 계약을 한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갱신에 실패하면서 국내 사업을 접어야 할 경우가 있다. 아예 상표권을 사들이면 이런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산업은행 이어 IBK도 펀드 조성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업 대 기업 간 거래다. 서로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이 만나야만 비로소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코데즈컴바인 사례는 IP 전문 투자펀드가 상표권을 매개로 기업 자금 사정에 숨통을 틔워주는 개념이란 점에서 기존의 상표권 매각과 조금 다르다.

자금 사정에 어려움은 있지만 브랜드 영향력이 있는 업체 입장에서는 꼭 상표권을 원하는 다른 업체를 찾아 협상해야 하는 부담 없이 바로 IP펀드를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상표권을 매각하되 그 상표권을 로열티를 주고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표권을 완전히 팔아치우는 것과도 개념이 다르다. 훗날 상황이 호전될 경우 상표권을 되사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해당 상표를 사서 직접 그 상표를 활용해 기업활동을 하려는 기업에 파는 것에 비해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유동성에 어려움이 없는 회사라 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상표권 투자 유치를 해 연구개발(R&D) 투자, 해외 시장 진출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브랜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만큼 이는 종전보다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더 높게 인정받는 계기도 될 수 있다.

KDB산업은행 IP펀드의 실무를 담당하는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의 김홍일 대표는 “코데즈컴바인 투자 유치 건이 알려지면서 상당히 많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상표권 투자 관련, 실질적인 투자 의뢰를 요청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7월 말 기준 5개에 달한다”라고 소개했다.

투자 환경도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가 창조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IP펀드를 장려하고 나선 것.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한 이상목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은 “종전에는 R&D 국책 과제의 평가가 단순히 연구를 끝내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성과를 특허, 사업권으로 만들고 여기에 투자까지 하는 IP펀드를 적극 만들도록 유도해 선순환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화답하듯 국책은행과 해당 부처가 발 빠르게 관련 상품을 만드는가 하면 지원 프로그램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KDB산업은행 뒤를 이어 IBK기업은행과 IBK캐피탈 역시 공동으로 IP펀드를 조성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부동산 등의 담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보유한 특허권을 담보로 개발기술사업화 자금 직접 대출을 시작했다.

관계자들은 상표권 투자에 상당한 의의를 둔다.

김윤태 KDB산업은행 투자금융부문 부행장은 “상표권은 대상 물건에 대한 이미지를 함축해 고객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해당 기업의 인지도와 직결되는 아이디어(=창조활동)의 산물이다. 산업은행이 첫 테이프를 끊은 만큼 IP금융의 범위가 특허권에서 상표권까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희 IBK캐피탈 대표는 “영화의 부가판권 등 문화 콘텐츠, 수산 전문 특허 등에 투자를 해보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상표권 등 다양한 영역의 지식재산권 투자로 확대할 것”이라며 거들었다.

상표권은 어떻게 값을 매길까. KDB산업은행·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기준은 이렇다.

‘상표권의 경제 가치는 일반적으로 해당 브랜드의 매출액에서 상표권의 기여도를 감안하고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 이때 현재 브랜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향후 출시할 브랜드까지 상표권에 포함시킨다. 신규 브랜드가 나오면 종전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등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이 있으면 점수가 더 높아진다. 더불어 세일즈앤드라이선스백은 해당 브랜드를 기업에서 재매입해야 하는 구조이므로 브랜드 가치뿐 아니라 회사 재무 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액을 결정한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브랜드 가치라는 게 매출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실제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브랜드만을 우선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투자 신청은 자산운용사(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에 투자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내외부 전문가의 투자 검토를 통해 진행된다”라고 소개했다.

획기적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긴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유형자산 담보 위주의 투자 환경이 주류인 상황에서 상표권 투자 산업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한 만큼 펀드 결성에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김홍일 대표는 “경영자의 브랜드 오너십이 기술 특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라 투자 대상 브랜드를 펀드로 명의 이전하는 데 심리적인 저항감이 있어 투자 진행 단계에 어려움이 있다”고도 토로했다.

상표권을 판 회사가 되살아나기는커녕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도 숙제다. 이럴 경우 해당 기업의 상표권 재매입을 산정하고 투자한 세일즈앤드라이선스백 방식 자체가 깨지면서 해당 펀드는 손실을 입을 수 있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제3의 잠재적 매입자가 있는 산업군의 상표권을 집중 선별해 투자하는 식으로 위험도를 낮추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귀띔한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사진 :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18호(13.07.31~08.06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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