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식재산권에 투자한다’…판 커지는 IP 금융
[스페셜 레포트 Ⅱ]
-특허권 등이 확실한 안전장치 역할, ‘미래 시장’ 선점할 열쇠는 결국 기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1. 1879년 에디슨이 개발한 ‘백열전구’는 전기를 우리의 일상 속으로 옮겨오는 혁신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품을 개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생산에 필요한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에디슨에게 길을 열어 준 것은 ‘백열전구 특허’였다. 그는 특허를 담보로 대출과 투자를 받아 제너럴일렉트릭(GC)의 모태가 된 전기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2. 2008년 금융 위기가 닥치자 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포드 등의 자동차업계는 유동성 위기에 부닥쳤다.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린 반면 포드는 위기를 극복하고 2010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 밑바탕이 된 것이 2006년 포드가 골드만삭스·JP모간 등 금융권으로부터 ‘기술·상표의 시장가치’, 즉 지식재산(IP)을 담보로 받은 25조원의 투자금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은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 핵심 동력이다. 최근 정부가 IP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에 따라 금융 투자업계를 중심으로 IP 펀드 등 IP 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IP 강국 한국…IP 금융은 이제 초기 단계
‘중국·미국·일본 그리고 한국.’ 전 세계에서 특허권을 많이 보유한 톱4 국가들이다. 세계지식재산권(WIPO)에서 발표한 2018년 세계지식재산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0만 건의 특허를 출원해 세계에서 넷째로 특허권을 많이 출원한 나라에 올랐다. 한국은 이 밖에 상표권 출원 11위, 디자인권 출원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양적인 측면으로만 따지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IP 강국’이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해마다 수많은 특허가 출원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이와 같은 특허를 활용해 실제로 사업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로 키우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아무리 잠재력이 큰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타트업으로서는 이 기술을 시제품으로 제작하는 것을 포함한 초기 자본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벤처캐피털(VC)업계에서도 최근 들어 ‘IP 금융의 활성화’에 많은 관심을 쏟아붓는 이유다.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s)는 쉽게 말해 고유한 기술이나 캐릭터 등과 같은 무형의 ‘지식’ 재산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 기술을 중심으로 한 ‘특허권’, 기존의 물품을 개량해 실용성을 높인 고안을 출원해 부여받는 ‘실용신안권’, 등록 상표를 지정 상품에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표권’, 등록된 디자인에 대해 독점적·배타권 권리를 인정받는 ‘디자인권’, 노래·영화·캐릭터 등과 같은 창작물을 만든 사람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이 있다.
다시 말해 ‘IP 금융’은 특허권·실용신안권·상표권·디자인권·저작권과 같은 모든 IP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금융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IP를 담보로 대출해 주거나 혹은 IP 펀드 등의 투자 활동이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IP 금융이라고 하면 주로 ‘특허권’과 ‘상표권’에 대한 투자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각각의 IP를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허권·상표권·실용신안권·디자인권은 ‘특허청’ 소관이다. 이와 달리 콘텐츠 저작권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리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IP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자산운용사인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의 김문수 대표는 “넓은 의미에서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투자도 IP 금융에 포함되지만 통상적으로 국내에서는 특허청의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의 ‘성장사다리펀드’로부터 자금을 출자 받은 펀드를 주로 ‘IP 펀드’라고 부른다”며 “넓은 의미에서 문화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투자는 IP 금융에 포함되긴 하지만 관리하는 정부 기관에 따라 자금이 출자되는 경로가 다른 만큼 일반적인 IP 펀드와는 별개의 ‘문화 콘텐츠 펀드’로 운용한다”고 말했다.
건축물의 평면도를 3차원 공간으로 재현해 내는 기술을 시연하고 있는 국내 한 스타트업.
◆벤처펀드와 IP 펀드, 뭐가 달라?
김 대표는 “기술 경쟁력이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기술금융’이나 ‘벤처펀드’ 등과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다”며 “다만 IP 펀드는 아무래도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평가할 때 ‘특허권’이라는 실질적인 권리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만큼 투자자에게는 IP가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IP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성 있는 IP’를 선별해 내는 안목이다. 김 대표는 “기술금융 기업들은 기술에 대한 평가가 등급으로 매겨지는데 반해 특허의 가치는 가격으로 산출된다”며 “투자를 위해 정확한 평가를 진행하는 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그만큼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지만 투자자에게는 더욱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특허 기술’이 시장에서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IP 투자는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 투자가 들어가는 것이 많다는 특성을 감안할 때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사실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IP 펀드의 만기가 대부분 7~8년인 것을 감안하면 중·장기 관점의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사모펀드 형태로 운용돼 기관투자가나 몇몇 거액의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 투자업계에서 최근 들어 IP 금융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는 IP가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지면서 실제로 IP의 시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으로 시야를 넓힌다면 스타트업의 성장성을 평가하는데 IP는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이 보유한 IP에 투자하는 ‘KB 지식재산 투자조합’ 펀드를 운용 중인 KB인베스트먼트의 이기호 벤처투자본부 팀장은 IP 투자의 성공 사례로 비디오 코덱 기술인 HEVC를 예로 들었다. 이 기술은 2014년 국제 표준 특허로 등록됐다. 이는 전 세계 기업들이 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벤처에 투자한다면 ‘세계시장을 무대’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팀장은 “기존에는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IP를 보유한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에 나가면 특허 공격을 받을 여지가 많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IP에 대한 중요성이 특히 부각되고 있고 국내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세계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IP에 투자하는 방법이나 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은 SLB 방식이다. SLB(Sales and License Back)는 부동산 금융에서 주로 사용되는 SLB(Sales and Lease Back)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스타트업이 B라는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특허 기술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펀드 운용사는 A 기업으로부터 B 기술의 특허권을 사들인다. 펀드 운용사는 바로 이 B 기술의 특허권을 다른 기업들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빌려줌으로써 ‘로열티’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식이다. 물론 A 기업 또한 B 기술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펀드운용사는 B 기술을 구매한 뒤 라이선스를 활용한 최소한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이 팀장은 “스타트업의 성장성을 말해줄 수 있는 핵심 기술이 ‘특허’인 만큼 국내에서는 IP에만 따로 투자하는 것보다 IP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IP 금융, 22년까지 2조원 규모로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와 특허청은 ‘IP 금융 활성화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5월 발표된 ‘동산 금융 활성화 추진 전략’의 일환이다. 핵심은 그동안 금융권의 높은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기술집약적 중소기업들이 IP를 통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창구를 더욱 열어주는 것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국내 IP 금융의 규모는 3670억원대에 불과하다. 2022년까지 이를 2조원대 규모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우수 특허 기반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IP 투자 펀드 조성도 크게 확대할 예정이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모태펀드의 자금을 출자 받아 결정된 펀드 금액은 총 1조933억원, IP 투자의 누적 금액은 8774억원, 총투자 기업의 수는 602개다. 특허청은 2019년에도 100억원의 신규 출자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회수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향후 5년간 1000억원 이상의 IP 투자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 밖에 4년간 특허청의 모태펀드 500억원, 성장금융의 성장사다리펀드 2000억원, 민간 2500억원 규모(총 5000억원)의 기술금융 투자 펀드를 공동으로 조성해 이를 통한 IP 투자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금융 친화적인 IP 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노력도 함께 진행된다. VC펀드의 IP 직접 소유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법인이 아닌 VC펀드가 IP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공동 소유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의 대안이 필요했지만 그러면 수익성이나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IP 금융 활성화 계획’에 금융 투자업계도 기대감이 큰 분위기다. 다만 여전히 국내 IP 금융이 ‘은행을 중심으로 한 IP 대출’ 중심이라는 점에서 ‘IP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