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지식재산, 즉 특허를 둘러싼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총성은 없지만 전쟁이란 표현이 적절한 이유는, 그야말로 기업들 간에 사활을 걸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삼성과 애플이 특허를 놓고 세계 각국에서 벌이는 분쟁이 적절한 예가 되겠죠. 수조원의 벌금과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기업 신뢰’가 걸린 이 싸움에서는 기기를 구동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기기의 모양까지도 특허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식재산이 돈이 될 뿐만 아니라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 자산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특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업계 차원에서만 가져왔던 특허에 대한 관심이 ‘삼성-애플’, ‘코오롱-듀폰’ 싸움 등을 계기로 보통 사람의 식탁 위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10월에는 국내 최초로 특허에 투자하는 아이피(IP·지식재산) 펀드가 출범했습니다. 산업은행과 특별자산 운용회사인 아이디어브릿지가 만든 일종의 사모펀드입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특허는 있는데 자금은 부족한 회사가 있습니다. 또 특허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펀드가 있습니다. 회사는 특허를 내놓고, 펀드는 자금을 내놓는 식으로 교환이 이뤄집니다. 특허 소유권이 펀드에 넘어가고, 회사는 이 자금을 밑천으로 사업을 벌입니다. 회사는 펀드에 특허 사용료를 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특허를 되사올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세일 앤 라이선스백’ 방식입니다.
펀드가 기업에 투자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진행할까요? 기술을 바탕으로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다른 기업에 기술을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거나, 국내외 기업이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후자 쪽, 즉 소송에 전념하는 아이피펀드를 속된 말로 ‘특허괴물’이라 합니다. 어감이 좋지 않은데, 실제보다 과도한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무리한 소송을 거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2000년대 초 벤처붐이 꺼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도산한 기업의 특허를 싼값에 대거 인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사용료를 받거나 소송을 진행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죠.
좀더 중립적인 의미로 제조 없이 특허 소송만으로 돈을 번다는 의미로 엔피이(NPE·비제조 특허전문업체)라는 용어도 많이 쓰입니다. 특히 지식재산에 대한 개념을 갖지 못한 채 세계 제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아시아 국가의 회사들이 미국 엔피이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 강국인 우리나라도 이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일부 거대 엔피이의 가장 큰 수익원이 한국 기업들이라는 통계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허괴물 성격을 가진 일부 엔피이의 부작용이 커지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에 나서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 정부 주도로 지식재산권 전문회사를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세계 각국도 관련 인력을 키우고 독자적 엔피이 지원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